[1화] 장순원
2026년 4월 18일, 장순원 작가는 서울대학교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로 우리를 초대했다. 졸업을 앞두고 여러 작업을 진행 중인 그녀는 자신의 작업과 생각,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사의 배경에 대하여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려고 할 때, 자연스럽게 흐르던 아이디어가 어떻게 하나의 구체적인 결정으로 이어지게 되나요?
참고하는 자료들이 있기는 하지만, 주로 텍스트를 쓰거나 영상의 형태로 상상합니다. 특정 작업을 시작할 때는 기본적인 구조를 넘어서 다양한 요소들을 글로 쓰거나 영상처럼 상상하면서 출발합니다. 전체적인 과정은 비교적 감각적으로 흘러가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님께서 신화나 전통적인 이야기를 자주 다루신다고 알고 있는데요. 작업을 시작하실 때 원래의 서사를 따라가시는 편인가요, 아니면 그걸 바탕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시는 편인가요?
저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쪽에 가까워요. 전통 신화의 기본적인 서사를 비틀고, 거기서 더 신체적인 감각이나 요소를 찾는 게 가장 중요한 목표예요.
예를 들어 여성의 몸이라든지, 뿔이나 촉수 같은 비인간적인 요소들에 더 집중하게 돼요. 이런 것들은 전통적인 서사의 중심에는 없지만, 여전히 강한 에너지나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원래의 이야기를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제 방식으로 다시 구성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제 회화에서는 특정한 서사에 대한 직접적인 레퍼런스는 거의 없고, 신화의 구조나 ‘문법’ 같은 것들을 가져오는 편이에요.
신화의 서사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문법’만 가져온다고 하셨는데, 작업에서 형태가 변형되는 과정은 의도적인 것인가요, 아니면 자연스럽게 변화하는 것인가요?
점진적으로 변화합니다. 스케치 단계에서는 형태가 비교적 명확하지만, 실제로 그리거나 채색하는 과정에서 점점 알아보기 어려운 형태로 변합니다. 이러한 변화 자체가 작업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정된 서사를 따르기보다 그 구조를 재구성하신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그렇다면 신화가 전승되는 방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신화라는 게 전승되는 과정을 보면, 사실 명확한 출처가 없고 굉장히 집단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들이잖아요. 어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상상된 이야기들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은 굉장히 열려 있고, 계속 변형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실제로 전승되는 방식들을 보면, 오히려 굉장히 단순하거나 투박하게 전달되는 경우도 많아요.
저는 그 부분을 더 파고들어서, 오히려 거기에서 빠져 있는 감각들을 다시 상상하려고 해요. 예를 들어 인물의 몸이라든지, 신체적인 감각이나 물리적인 측면처럼, 기존 서사에서는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 부분들, 저는 그런 부분들을 다시 붙잡아서 더 물질적이고, 더 날것에 가깝고, 더 야생적인 감각으로 확장시키고 싶어요.
재료와 작업 과정에 대하여
어떤 작품들을 보면 종이를 위에 덧붙이거나, 이미지 위에 또 다른 이미지가 겹쳐지는 식으로 레이어가 쌓이는 느낌이 있는데요. 이런 중첩이나 깊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떤 작업에서는 그림 위에 종이를 한 겹 더 올리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그 위에 이미지를 더 얹으면서 여러 층이 쌓인 것 같은 느낌을 만들기도 해요.
이런 중첩은 제가 이미지를 어떻게 인식하고 이해하는지랑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거기에 몰입하면서도, 동시에 계속 그 안에서 빠져나오려고 하는 태도를 가지고 작업을 하는 것 같아요. 이건 그림 자체이기도 하고, 이미지를 대하는 제 태도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어떤 장면이나 서사를 만들더라도 그게 완전히 닫혀 있는 구조처럼 보이기를 원하지 않아요. 계속 열려 있고, 변하고 있는 상태로 두고 싶어요.
그래서 종이를 겹치거나, 프레임을 만들거나, 이미지 위에 이미지를 얹는 방식들을 사용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이렇게 하면 단순한 평면이라기보다, 하나의 스크린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계속 이미지로 인식되는 어떤 감각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또 예상하지 못한 형상들이 나타나거나, 옆에 있는 요소들과 연결되기도 하는데, 그런 관계들이 작업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처음 작업을 봤을 때는 이런 중첩된 느낌이 되게 강하게 느껴졌고, 약간 시간이나 역사 같은 게 안에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작가님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네, 이미지 안에 시간성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부분은 오래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동시에 굉장히 현재적인 느낌도 같이 있는 것 같아요.
작품을 이미지로 보시나요, 아니면 오브제로 보시나요?
둘 다라고 생각합니다. 이미지 자체는 비현실적이고 상상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현실의 표면 위에 존재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미지이면서 동시에 오브제라고 생각합니다.
전시를 보면 드로잉은 더 괴물적인 느낌이 강하고, 회화는 더 인간적인 형태에 가까운 듯하면서도 여전히 추상적인데요. 이 두 방식의 차이를 어떻게 보시나요?
사실 유화가 제 주요 매체였습니다. 유화는 물성이 미끄러운 느낌이 있어서, 다른 방식의 탐구를 위해 드로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회화가 작업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지와 먹 같은 전통 재료를 사용하시는데, 이러한 재료가 작업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어릴 때부터 한지를 사용해 왔습니다. 특히, 장지는 섬유질이 강하게 노출된 재료라서 지우고 그 위에 다시 그리는 과정을 반복하며 층을 쌓을 수 있습니다. 그 성격이 좋아 오래 전 부터 사용해왔고, 저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재료입니다. 또한 일본의 에마키와 같은 동아시아 전통 회화에서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공간에 대하여
작품들이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라기보다 단편적인 서사의 일부처럼 느껴지는데요. 각각의 작품은 서로 그리고 전시 공간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있나요?
각각의 작품은 단편적이지만, 전체 전시나 작업 시리즈 안에서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세부적인 내용은 다르더라도 더 큰 구조 안에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전시할 때 작업이 공간이랑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도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캔버스 밖으로 확장되는 느낌이라든지요.
전시에서는 작업을 하나의 이미지로만 보는 게 아니라, 공간 전체랑 같이 경험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경우에는 작업이 캔버스를 넘어서 공간으로 확장되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공간 자체가 작업에 큰 영향을 줬던 경험도 있으신가요?
네, 예전에 했던 전시 중에 공간 자체가 굉장히 중요했던 경우가 있었어요. 화이트 큐브가 아니라 기존 건물을 개조한 공간이었고, 그 공간에 대한 반응으로 작업이 나오기도 해서 더 의미 있었던 것 같아요.
꼭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아도 작업이 자연스럽게 공간으로 확장될 수도 있다고 보시나요?
꼭 특정 공간에 직접적으로 맞춰진 작업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공간을 점유하거나 확장되는 느낌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업이 공간 안에 놓였을 때, 전체를 채우는 것 같은 감각이 생기기도 하고, 저는 그런 부분을 항상 의식하면서 작업하는 것 같아요.
작업이 공간을 흡수하거나, 반대로 밖으로 확장되는 느낌이라고 볼 수도 있을까요?
네, 맞아요. 작업이 공간에 스며드는지, 아니면 그 밖으로 확장되는지, 그런 관계를 계속 생각하면서 작업하고 있어요.
관객과의 상호작용에 대하여
작품을 관객에게 보여줄 때, 이해되기를 바라시나요, 아니면 어떤 감정을 느끼기를 바라시나요?
관객들이 작품을 보면서 스스로 추측해 보기를 바랍니다. 어떤 사람은 무언가를 알아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느 쪽이든 괜찮습니다. 반드시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다만 작품을 통해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쉽게 설명되거나 명확히 인식되지는 않지만, 그 감각 자체가 중요합니다.
작가님의 작업에서 특히 좋아하는 점 중 하나는 제목입니다. 제목이 굉장히 구체적이지만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설명하지는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예를 들어 Without a Hurry 같은 경우, 그림은 다소 불안하고 거의 괴물적인 느낌을 주는데, 제목은 관객에게 무엇을 보라고 지시하지 않으면서도 작가님의 감정과 연결되는 느낌을 줍니다.
네, 제목을 만드는 과정은 제 작업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사실상 작품에서 유일하게 명확한 것을 전달하는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제목은 이미지 전체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작은 단서처럼 작동합니다. 저는 작품에 제목을 붙이지 않는 경우는 없습니다.
다른 문화적 맥락에서 작업을 선보일 수 있다면, 어느 곳에서 하고 싶으신가요?
최근에는 독일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2년 전에 일본에서 레지던시를 했는데, 그곳의 신사와 관련된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약 2,000년 정도 된 신성한 나무가 있었고, 그것이 지역의 민속과 신화와 연결되어 있었어요.
작업이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고 느끼시나요?
네, 확실히 그렇습니다. 저는 매우 지역적인 요소들에 집중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특정 장소에 전래되는 작은 이야기들을 발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만약 독일에서 작업하게 된다면, 작업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북유럽 신화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 신화를 직접적인 주제로 사용하지 않더라도, 어떤 장소의 역사나 문화적 맥락을 공부하는 것은 저에게 항상 중요한 부분입니다.
현재 작업이나 이번 작품에 대해 추가로 공유하고 싶은 것이 있으신가요?
지금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방향인지 아직 확신은 없지만, 변화의 시기에 있다고 느끼고 있습니다.